일상

나의 자동차 이야기

데니스더메니스 2021. 2. 17. 04:13

26살 겨울 취업을 하고 창원에서 3달연수를 받고 올라온 직후, 3달간 모은 월급으로 첫차를 바로 샀다.

당시 3달치 월급이 천만원이 약간 넘었는데 퇴근 후 직거래로 09년식에 2만정도 탄 딱 천만원짜리 중고 SM3를 사고 (직장중에도 병행하던)과외를 하러 이동을 했다.

 

첫차 거래의 강렬한 기억은

우선, 그때가 20살 대학 입학 전 수동으로 면허를 딴 이후 생전 처음 오토 자동차를 운전을 했다는 점이고,

시동 거는 방법은 물론, 출발하는 방법도 몰라 자동차를 팔던 상대가 혼자 가실 수 있겠냐고 물어봐 괜찮으니 먼저 가시고 전 좀 천천히 가겠다고 답변을 했던 것,

또 당시만 하더라도 퇴근 이후 과외도 병행했기에 바로 과외를 하러 이동했는데 서울대입구역 직진 후 나오는 콩나물국밥집에서 유턴을 하는데 핸들을 천천히 돌리는 바람에 그 작은 차로 왕복 6차선에서 길 끝에 박아버려 과외 하는 내내 범퍼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의 첫 애마는 실내에 파란 엠비언트 같은 것이 있었고 좌우 백미러에는 깜빡이 넣을 때 마다 얄궂은 화살표 모양으로 전구가 번쩍거렸으며 멋스러운 스티커 하나가 본네뜨에 붙어있었다.

<너무 기분 좋게 차 인수한 첫날 차도에 긁어먹은 사진을 찾았다!>

비록 통장에 딱 자동차 값만 있고 보험료를 생각 못해 몇 십 만원을 급하게 어머니에게 빌렸지만 부모님 포함한 우리 가족의 첫 자가용을 구입했다는 뿌듯함과 내차라는 설렘에 집 앞에 주차한 후 차 안에서 한참을 있다가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첫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인 13년 나는 계획에 없던 두번째 차를 사게 되었다. 당시 나의 취미는 SK엔카에서 중고차 구경하기였다. 실제로 살 계획도 없으면서 언감생심 독3사는 구경도 안하고 감가가 큰 포드나 닛산, 혼다, 폭바, 피아트 등 수입차를 보며 꿈을 키웠다.

같은 취미를 가진 선배 한명과 서로 찾은 감가 큰 자동차를 공유하며 사지도 않을 자동차 품평하는 재미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아침 8시 출근하던 지하철에서 13년 풀체인지 직전 구형모델인 12년식 중고 알티마 3.5cc 겨우 2.3만키로탄 중고차가 1680만원에 올라온 매물을 보았다.

당시 신차가 3700만원 정도였으니 풀체인지 전 폭풍 할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혹시 전 차주가 자살해서 판 차는 아닌가 고민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싼 가격이었다.

 

마침 차를 바꿀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선배에게 지체 없이 매물을 전달했고 뭐에 홀렸는지 당장 구매를 결정하라 강요하며 선배가 차를 11시까지 사지 않을 경우 내가 당장 사러 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꽤 좋은 매물이었던 알티마에 선배도 동요했지만 형수는 좀 더 좋은 브랜드의 차를 원해 결국 포기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급작스레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미안한데 차를 바꾸면 안되겠냐 사정을 했다.당시만 해도 착하기만 하던 아내는(지금도 착한데 가끔 화도 내긴 함) 별말 없이 “그래서 얼마나 드는데” 라고 말을 했고 나는 오분만 기다리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고 계산한 이후 보험료, 세금 유지비, 감가 등이 월에 얼마 정도가 든다고 보고하고 내년이면 태어날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고 모성애를 자극하며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는 설명을 듣고 바로 알겠다고 했고 나는 짜릿한 기분을 참지 못하고 30분 뒤인 점심시간 성수에 있는 SK엔카 직영몰로 달려가 아침 8시에 인터넷으로 본 차를 4시간 30분만에 현금으로 구매해 버렸다.(읭?ㅋ)

<예쁜 휠 때문에 옆모습이 더 멋졌지만 아쉽게 전면사진>

알티마는 정말 나와 천생연분이었다. 세련된 진한 회색에 사제 블랙휠을 달고 있었으며 3500cc 270마력 엔진은 엄청나게 만족스러웠다. 차를 잘 아는 사람에겐 현차나 다름없는 닛산의 중형차일 뿐이지만 외제차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당시엔 흔하지 않는 외관과 브랜드에 어딜 가도 괜찮아 보이는 차였고 무엇보다 절대 내가 구매한 차 가격으로 보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2018년 해외 부임을 하며 5년간 잘 타고 5년간 탄 차를 무려 천만원에 팔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이차보다 2.5배정도 비싸게 주고 산 지금의 차는 알티마가 주었던 만족에 반도 주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며 행복의 역치가 너무나 올라가 다음에 어떤 차를 타더라도 알티마를 사던 그 행복한 감정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슬픈 생각도 든다.

 

다음 샀던 차는 내가 타는 차는 아니었다.

 

나도 부모가 되어고 나 하나 알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했던 불효자가 조금씩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다.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는 추운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 가기가 어려운데 친구분이 차로 태워 시장을 같이 가주는 게 참 고마운 일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순간 머리가 띵 했다.

 

그까짓 중고차 한대 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제까지 십년 넘게 오토바이 타고 위험과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어미니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법.

그렇게 늦게라도 15년에도에 12년식 4만키로정도 탄 까만색 중고 모닝을 구입했다.

<차 산다는 말도 없이 무작정 보험까지 가입해 깜짝 전달한 당일>

딱 첫날에만 도대체 차를 왜 샀냐고 불평하시던 어머님은 내가 이 편한걸 심지어 그리 비싸지도 않은데 그간 멍청하게 왜 안 샀는지 모르겠다고 아직도 말씀 하신다. (사실 저 사진 스티커로 가려진 얼굴을 보면 어머니께서 굉장히 환하게 웃고 계셔 사실 첫날도 기분은 좋으셨던 듯)

그리고 이 모닝은 기특하게 아직도 잘 굴러가고 있으며 내년쯤 어머니껜 다음 차를 구매해 드릴 예정이다. ^^

 

이 모닝 역시 (아직까지도)생각 할때마다 매우 행복한 감정을 준다.

한달에 이 차 가격보다 월급이 더 커진 지금에도 이 차보다 더 큰 행복을 주는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소비나 소득에 따른 행복은 절대로 금액 만큼 비례해서 커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 자동차 이야긴 여기까지.

사실 이 다음 자동차 이야기는 별 흥미로운 내용이 없다. 해외에 주재하며 처음 신차를 샀고 좋은 차는 아니지만 차 가격도 이전에 차보다 훨씬 비싼데 그냥 운송수단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 차가 변했는지 내가 변했는지 모르겠다.